“이번 편지가 길어진 것은 짧게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쓴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글쓰기를 조금만 공부해도 금방 만나는 유명한 문장이지요. 처음 들으면 말이 거꾸로 된 것 같아 뒤통수가 얼얼합니다.
그런데 직접 써 보면 압니다.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은 한 쪽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쪽을 한 문단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뜻을 잃지 않고 줄이려면 능력도, 품도 훨씬 많이 듭니다.
길게 쓰기가 가장 쉬운 시대
파스칼은 펜으로 편지를 쓰던 사람입니다. 종이에 쓴 글은 고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도 손으로 쓸 때는 백지에 뼈대부터 잡고 씁니다.
키보드는 다릅니다. 일단 쏟아 내고, 얼마든지 지웠다가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도 길게 쓰기 좋은 환경입니다. 주제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이어지는 긴 글을 요즘 자주 보게 되는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AI에게 부탁하면 한 쪽짜리 글이 몇 초 만에 나옵니다. 길게 쓰는 비용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줄이는 비용은 그대로입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는 여전히 쓰는 사람이 정해야 하니까요.
길게 쓰는 일은 기계가 대신해 줍니다. 짧게 줄이는 일은 아직 사람의 몫입니다.
글은 왜 산으로 가는가
글은 쓰다 보면 이것저것 더 쓰고 싶어집니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쓰다가 새로운 개념이 나오면 그것을 신나게 설명하고, 설명하다 보면 또 덧붙일 말이 생깁니다. 이렇게 술술 나온다는 건 대개 잘 아는 분야라는 뜻이라, 할 말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정신을 차려 보면 글은 산으로 가 있습니다.
남 얘기가 아닙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저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글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 제가 배웠고, 지금도 붙들고 있는 몇 가지 노하우를 나눕니다.
글 전체를 다룰 때
하나, 한 글에 한 주제. 그 주제는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 한 문장에는 메시지가 하나만 담겨야 합니다. 한 문장으로 말이 안 된다면, 아직 쓸 준비가 덜 된 것입니다.
둘, 더 쓰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 글로. 쓰다가 다른 주제가 떠오르면 이 글에 넣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한 줄로 미뤄 두고 따로 씁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껴 두는 것입니다.
셋, 길어졌다면 요약을. 어쩔 수 없이 길어진 글에는 요약을 따로 붙입니다. 업무 메일이나 보고서라면 요약을 끝이 아니라 맨 앞에 두는 편이 낫습니다. 읽는 사람은 첫 줄만 보고 판단할 때가 많으니까요.
문장을 다룰 때
하나, 복문을 줄입니다. 한 문장에 생각 하나. “~했는데, ~해서, ~하므로”로 길게 이어지는 문장은 마침표로 끊어 보면 대부분 더 잘 읽힙니다.
둘, 꾸밈말을 덜어 냅니다. “매우”, “정말”, “굉장히”를 지워도 뜻이 그대로라면, 없어도 되는 말입니다.
셋, 접속사 없이 써 봅니다. 글쓰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면 도전해 볼 만합니다. “그리고”, “그래서”, “하지만” 없이도 독자가 흐름을 따라온다면, 문장의 순서가 이미 논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정도라면 상당한 수준에 오른 것입니다.
넷, 강조는 아껴 씁니다. 굵은 글씨는 꼭 필요한 자리에만 씁니다. 모든 것이 굵으면 아무것도 굵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스템으로
총무로 일하면 공지문을 자주 씁니다. 읽는 사람이 많은 글이라, 한 줄이 흐릿하면 그만큼 되묻는 사람도 늘어납니다. 짧고 분명하게 쓰면 그만큼 일이 줄어듭니다.
다만 짧게 쓰겠다는 결심은 바쁜 날 가장 먼저 무너집니다. 그럴 때에는 형식적 제약을 두면 좋습니다. 공지 서식 맨 위에 ‘한 줄 요약’ 칸을 두고, 제목에는 ‘무엇을, 언제까지’를 넣게 하는 식입니다. 칸이 있으면 쓰는 사람은 한 문장으로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습관도 시스템이 붙들어 주어야 오래갑니다.
‘짧은 글이 미덕’이라는 글이니 평소보다 짧게 마치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어려운 것을 쉽게 쓰는 법’을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방금 말한 ‘다음 글로 미루기’, 바로 써먹었습니다.
파스칼에게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내면 됩니다. 짧게 쓸 시간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