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 한글날

한글날에 돌아보는
언어 권력의 민낯

한글은 민주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직장의 언어는 왜 여전히 봉건적일까요?

오늘은 한글 반포 580돌, 한글날입니다. 세종이 만든 한글은 "누구나 쉽게 배워 쓸 수 있는" 민주적인 문자였습니다. 양반이 독점하던 한자와 달리, 한글은 백성 누구나 제 생각을 적을 수 있게 만든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글로 이루어진 한국 직장의 말은 세종의 뜻과 반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야, 이거 좀 봐", "빨리 끝내자"로 대표되는 야자문화, "형, 이것 좀 부탁드려요"처럼 위계를 친근함으로 포장하는 형동생문화가 그렇습니다.

요즘 우리는 AI 비서에게도 "정리해 주세요", "고마워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옆자리 동료는 여전히 "야"라고 부릅니다. 기계에게 쓰는 존댓말을 사람에게는 아끼는 셈입니다.

말은 중립적인 도구가 아닙니다. 권력관계를 굳히고, 조직문화를 썩히고, 결국 성과까지 갉아먹습니다.

"이걸로 하자. 오늘 끝내자."

얼핏 함께 하자는 청유형이지만 본질은 명령입니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던지는 "~자"에는 거절할 틈이 없습니다. 더 노골적인 것은 "야!"로 시작하는 호칭입니다. 이름도 직급도 아닌 "야!" 한 글자에는 '너는 내 아래'라는 메시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10년 가까이 건설업과 제조업의 현장과 본사에서 일하며 이 문화를 몸으로 겪었습니다. 대기업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회의 중에 "야, 그 자료 좀 띄워 봐"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 자리는 더 이상 협업의 공간이 아닙니다. 듣는 사람은 의견을 내는 사람에서 지시를 수행하는 사람으로 쪼그라듭니다. 흔히 쓰는 '상사', '부하', '고참' 같은 단어도 군대식 위계를 깔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기분 나쁜 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쓴소리가 위로 올라가지 못하면 의사결정의 질이 떨어지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회사가 치릅니다.

"형, 오늘 회식 가능하시죠?"

형동생문화는 야자문화보다 교묘합니다. 가족 같은 호칭으로 친밀함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거절을 더 어렵게 만드는 장치로 쓰입니다. "형"이라고 부르는 순간 거절은 업무상 판단이 아니라 "동생을 외면하는 냉정한 행동"이 됩니다. "우리가 남이가"인 셈이지요.

이 문화는 야근, 회식, 사적인 부탁처럼 업무 밖의 요구에서 특히 힘을 씁니다. "형, 오늘 저녁에 잠깐 도와주실 수 있어요?"에는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지?"라는 압박이 들어 있습니다.

가족 같은 호칭은 업무의 경계를 흐리고, 그 흐릿한 경계에서 부조리가 자랍니다.

말이 다르면 조직이 다릅니다

모든 한국 직장이 이런 것은 아닙니다. IT나 광고 업계에서는 직급과 나이에 관계없이 "~님"을 쓰는 곳이 많습니다. "김 대리님"도 버리고 "수진님", "민호님"으로 부르는 곳도 흔합니다. 반면 제가 겪은 건설·제조 현장에서는 야자문화와 형동생문화가 여전히 강했습니다.

단순한 관습 차이가 아닙니다. 말이 조직문화를 만들고, 조직문화가 성과를 좌우합니다. 수평적인 호칭을 쓰는 조직에서는 직급이 낮은 사람도 의견을 내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심리적 안정감으로 이어지고, 그 안정감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쓴소리가 나옵니다.

반대로 "야, 그냥 이렇게 해" 앞에서 "이 방식은 리스크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런 조직에서 직장 만족도가 낮은 것은 당연합니다. 저 역시 이 비효율을 겪은 뒤로, 조직을 고를 때 수평적인 문화를 가장 먼저 봅니다.

세종이 통탄할 일

세종은 문자가 소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 직장에서 그 글자로 하는 말은 다시 권력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야자문화와 형동생문화는 '말투가 거칠다'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위계를 재생산하고, 불합리를 정당화하고, 조직이 나아갈 길을 막는 구조의 문제입니다. 한글날에 돌아볼 것은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가만이 아닙니다. 그 한글로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도 함께 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부터

나부터. 직급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님"을 쓰면 어떨까요. "야" 대신 이름을 부르고, "~하자" 대신 "~해 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것입니다. 존칭은 형식이 아니라, 상대를 동등한 업무 파트너로 대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조직은 원칙을 글로. "사내에서는 직급·나이와 관계없이 ~님 호칭을 쓴다"를 규정으로 만들고, 신입 교육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리더가 먼저 해야 합니다. 임원이 막내에게 존댓말을 쓰는 모습 하나가 천 마디 강의보다 셉니다. 물론 그걸 보고 듣고도 이를 악물고 반말을 지키는 사람도 봤습니다.

그리고 시스템으로. 총무로 일하며 배운 것은, 좋은 원칙도 시스템이 없으면 금방 잊힌다는 사실입니다. 호칭 원칙을 입사 안내서 첫 장에 넣고, 사내 메신저 표시 이름을 "이름+님"으로 맞추고, 공지문 서식에서 "~하자"를 "~합니다"로 바꿉니다. 말은 습관이고, 습관은 환경이 만듭니다. 조직문화는 선언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매일 쓰는 말에서 바뀝니다.

한글은 민주적이었습니다. 그 한글로 하는 한국 직장의 말도, 이제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이 글은 2025년 한글날에 처음 썼고, 2026년 한글날(한글 반포 580돌)을 맞아 다시 다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