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5천 명이던 유튜브 채널을 제 손으로 내린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모르는 걸 아는 척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요즘 AI를 두고 가장 많이 나오는 비판도 같습니다. 모르는 걸 그럴듯하게 말한다는 것.
AI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하나 더 고백하겠습니다. 제가 10년 가까이 해 온 일의 대부분은 AI가 할 수 있습니다.
회계 처리는 회사의 가계부를 쓰는 일입니다. 거래마다 증빙이 남고, 그 증빙을 읽어 계정을 고르고 차변과 대변을 나누는 일은 AI에게 어렵지 않습니다. 총무의 문서 일도 다르지 않습니다. 견적을 모아 비교표를 만들고 승인용 보고서를 쓰는 데 AI는 몇 초면 충분합니다. 매장에서 고객을 만나 상품을 팔던 일도 결국 화면 너머로 갈 겁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던 방문판매가 사라졌듯이요.
그래서 두렵냐고요? 생각보다 담담합니다. 매일 AI와 일하기 때문입니다.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고, 이 사이트도 AI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써 볼수록 분명해지는 게 하나 있습니다.
제 경쟁 상대는 AI가 아닙니다. AI를 저보다 먼저, 저보다 잘 쓰는 사람입니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도 한 대담에서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앞으로의 대결은 인간과 기계가 아니라, 인간과 'AI를 더 잘 쓰는 인간'의 대결이라고요. 크게 공감했습니다.
사무는 AI에게, 사람의 일은 사람에게
총무를 하며 늘 느낀 건, 이 일이 책상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현장에 갑니다. 쓰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불편에 공감합니다. 필요한 업체에 바로 연락하고, 없으면 새로 찾습니다. 총무는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적성에도 맞습니다.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고, 사람을 응대하는 일도 곧잘 하니까요.
반대로 사무만 하는 총무는 대체될 겁니다. 나쁜 소식만은 아닙니다. 정리는 AI에게 맡기고, 사람 사이의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으니까요.
사옥 이전이나 큰 계약을 다시 짜는 일처럼 어려운 프로젝트에 여러 번 참여했습니다. 돌아보면 가장 크게 남은 건 회사에서 일이 실제로 굴러가게 만드는 감각입니다.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하는지, 누구를 설득해야 하는지, 무엇을 놓치면 멈추는지. 소중한 감각이지만, 이것만으로 10년 뒤를 버틸 수 있을지는 늘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총무에 ERP·그룹웨어·AI 자동화를 더하려 합니다. 사람의 일은 사람이 지키고, 사무는 시스템이 돌게 만드는 총무. 제가 생각하는 다음 총무입니다.
시간보다 시도
불안하다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회사 밖에서 두 번 도전했습니다.
어릴 때 '대항해시대'를 하며 자란 세대라 그런지,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무역의 원초적인 매력에 늘 끌렸습니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인테리어 소품을 들여와 집에서 다시 포장해 팔았습니다. 브랜드 이름은 「천원만원」. 네이버와 쿠팡에 올렸고, 택배사와 계약도 맺었습니다. 두세 카톤이던 물량이 일곱 카톤까지 늘었고, 월매출은 100만 원까지 갔습니다. 거기까지였습니다. 들여온 물건의 절반가량이 불량이었거든요. 멀리서 사진만 보고 사서는 답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직접 가 봤습니다. 중국 이우시장에 두 번 출장을 갔습니다. 그곳은 천국이었습니다. 우리가 쓰는 물건이 얼마나 싸게 거래되는지 눈으로 봤고, 시장 가격에도 마진이 붙어 있어서 공장까지 가면 더 싸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애견 의류를 들여오려 했지만 공장의 서류 협조가 막혔습니다. 알아보니 같은 물건을 이미 국내에서 누군가 팔고 있었습니다. 접었습니다.
둘 다 실패입니다. 대신 얻은 게 있습니다. 혼자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데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세금 증빙, 무역과 관세, 브랜딩, 변리사와 함께한 상표 등록까지 몸으로 배웠습니다. 제 이름으로 등록한 상표(earthawareness, '지구인식')도 하나 남았습니다.
트렌드 분석가 송길영 작가는 수고를 노동의 총량이 아니라 생각과 시도의 총합으로 봅니다. 제 경험도 그렇습니다.
오래 앉아 있던 시간보다, 해 본 시도가 저를 만들었습니다.
AI 시대에는 시도의 값이 떨어집니다. 몇 달과 큰돈이 들던 실험을 이제 며칠이면 해 볼 수 있고, 실패해도 덜 아픕니다. 그렇다면 더 자주 시도하는 사람이 유리하지 않을까요?
아는 척하지 않기, 이름을 걸기
처음에 말한 채널 이야기를 조금 더 하겠습니다. 모두가 주식 이야기를 하던 때, 「듣는주식」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습니다. 리딩방은 하기 싫었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했고 사업보고서 읽는 걸 좋아해서, 사업보고서와 증권사 리포트를 쉽게 풀어 주는 채널을 만들었습니다. 3개월 만에 구독자 1,000명, 1년 만에 5,000명이 모였습니다. "넥스트 슈카월드"라는 응원과 함께 악플도 받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멈칫했습니다. 내가 이 회사의 미래를 뭘 안다고 평가하고 있지? 남의 분석에 기대고 있지는 않나? 답은 분명했고, 채널을 내렸습니다. 모르는 걸 알아차리고 멈추는 일은 아직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후회하는 것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끝내면 지워 버리는 버릇입니다. 채널도 그렇게 지웠고, 그래서 밖에 남은 게 없습니다(영상은 제 컴퓨터에만 있습니다). 한때는 가명 뒤에 숨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래 살아남는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자기 이름을 걸고 얼굴을 드러낸 사람들이었습니다. 관계는 진정성이 있어야 오래갑니다.
회사 이름에 기대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그래서 제 이름을 걸고, 지우지 않고 남기기로 했습니다.
kooahn.com과 이 페이지가 그 시작입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천원만원」을 할 때 가장 괴로웠던 건 매출이 아니었습니다. 불량품 앞에서의 고민이었습니다. 반품을 받아 주면 손해가 쌓였고, 모른 척 팔자니 양심에 찔렸습니다. 그래서 불량품은 팔지 않고 반품하거나 버렸습니다. 그 손해가 쌓이면서 한계가 왔습니다.
AI가 많은 일을 해 줄수록 사람에게 남는 건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한 일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것. 다음에도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마음. 총무가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한 것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AI와 일하는 시대에, 저는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려 합니다.
이 글은 2026년 10월에 처음 썼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계속 고쳐 씁니다.